일본의 전수지전지(全樹脂電池, APB)란? 구리·알루미늄 대신 수지로 만드는 차세대 배터리

전수지전지(全樹脂電池, APB:All Polymer Battery)는 기존 리튬이온전지와 무엇이 다른가?

전기자동차와 ESS 시장이 성장하면서 배터리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전고체전지, 나트륨이온전지, 리튬황전지 등 여러 차세대 전지가 개발되는 가운데 일본에서 독특한 방식의 배터리가 개발되어 왔습니다.

바로 전수지전지(全樹脂電池, All Polymer Battery)​입니다.

일본의 APB株式会社가 개발하는 기술로, 회사명인 APB 역시 All Polymer Battery에서 유래했습니다.

전수지전지는 완전히 새로운 전기화학 원리를 사용하는 전지라기보다 리튬이온전지의 구조와 제조방식을 크게 바꾼 차세대 리튬이온전지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APB는 2018년 설립되었으며, 개발자인 호리에 히데아키(堀江英明)와 일본 산요화성공업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해 왔습니다.



1. 왜 ‘전수지(全樹脂)’라고 부르는가?

기존 리튬이온전지에는 양극과 음극의 전류를 모으는 집전체(Current Collector)​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양극 → 알루미늄(Al)박
음극 → 구리(Cu)박
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전수지전지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러한 금속 중심의 전지 골격을 도전성을 가진 고분자 수지계 재료로 바꾸는 것입니다.
활물질을 특수 수지로 피복하고 이를 수지 집전체에 적용하여 전극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All Polymer Battery’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다만 이름 때문에 “전지가 전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리튬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양극·음극 활물질까지 모두 일반 플라스틱으로 대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핵심은 기존 전지에서 금속이 담당하던 구조적·전기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수지계 소재와 새로운 전극구조로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2. 또 하나의 핵심은 ‘바이폴라 구조’

전수지전지의 또 다른 핵심은 바이폴라(Bipolar) 적층구조​입니다.
기존 배터리는 여러 개의 셀을 만들고 이를 탭이나 버스바 등을 이용하여 연결합니다.
반면 바이폴라 전지는 한쪽 면에는 양극, 반대쪽에는 음극 기능을 갖도록 구성하고 이것을 반복 적층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양극 | 집전체 | 음극 → 양극 | 집전체 | 음극 → 양극…
형태로 전지를 연속적으로 쌓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부품 수를 줄이고 전지 내부의 불필요한 공간을 감소시켜 대형화와 높은 체적 에너지밀도를 추구하기에 유리합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도 APB의 주요 특징으로 바이폴라 적층구조와 수지계 기본부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3. 기존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하면?

구분기존 리튬이온전지전수지전지(APB)
기본 원리Li-ionLi-ion
집전체주로 Al·Cu 금속박도전성 수지계 집전체
구조일반 적층·권취구조바이폴라 적층
제조금속박 코팅 등수지계 전극 제조
대형화셀 연결 필요대면적 적층에 유리
형상 자유도상대적으로 제한비교적 높음
주요 특징산업기반·성능 검증안전성·공정 단순화 가능성

따라서 APB는 전고체전지처럼 전해질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기술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전지재료 자체의 혁명보다는 ‘전지 구조와 제조공정의 혁신’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안전성이 주목받는 이유

리튬이온전지에서 가장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가 내부단락과 이에 따른 급격한 발열, 즉 열폭주(Thermal Runaway)입니다.
APB는 금속 집전체 대신 수지계 집전체를 사용함으로써 이상상태에서 급격한 대전류가 흐르는 것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APB가 2024년에 출원하고 2026년 7월 공개된 일본 특허에서도 폴리올레핀 수지와 도전성 필러를 포함하는 수지 집전체를 이용해 내부단락 시 대전류와 발열을 억제하는 기술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소재기술이 등장합니다.
수지는 원래 전기가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지에 카본계 등의 도전성 필러(Conductive Filler)​를 분산시키면 전기가 흐르는 복합재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즉,
Polymer + Conductive Filler → Conductive Polymer Composite
라는 복합재료 기술이 배터리 집전체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는 배터리 기술인 동시에 고분자·복합재료·계면제어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제조공정도 달라질 수 있다

APB 기술의 또 다른 장점으로 제시되는 것이 제조공정 단순화입니다.
기존 리튬이온전지는 금속박에 전극 슬러리를 코팅하고 건조·압연·절단·적층 또는 권취하는 복잡한 제조공정을 거칩니다.
전수지전지는 활물질을 수지로 피복하고 수지 집전체에 적용하는 독자적인 공정을 사용합니다. 산요화성은 이를 통해 기존 리튬이온전지보다 제조공정과 리드타임을 단축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대량생산이 성공한다면 제조설비와 공정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6. 그렇다면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대체할까?

현재 단계에서는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APB는 과거 대규모 양산계획을 제시했고 ESS와 같은 정치형(定置型) 축전지를 우선 시장으로 검토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NEDO의 그린이노베이션기금 사업에서 진행됐던 ‘고용량 전수지전지 개발’ 프로젝트는 단계평가 결과 2024년도에 종료​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대규모 상업생산은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APB의 연구는 의미가 큽니다.
기존 배터리 산업이
활물질 → 전해질 → 분리막
중심의 경쟁이었다면 전수지전지는 여기에
집전체 → 전극구조 → 수지복합재료 → 제조공정
이라는 새로운 경쟁영역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7. 재활용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재활용 관점에서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기존 리튬이온전지에는 Al과 Cu 집전체가 상당량 존재합니다. 전수지전지가 상용화되고 수지계 집전체의 비중이 증가한다면 기존 배터리 재활용 공정의 물질수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파쇄 후
Black Mass + Cu + Al + Polymer
로 분리하던 기존 개념에서 수지와 도전성 필러가 포함된 새로운 복합물질의 분리·열분해·회수기술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배터리 제조기술의 변화는 결국 도시광산과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의 변화로 연결됩니다.

결론

APB 전수지전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리튬이온전지에서 금속 중심의 전지 골격을 도전성 수지와 바이폴라 구조로 재설계한 배터리”
입니다.
전고체전지가 ‘전해질의 혁신’이라면, APB 전수지전지는 집전체·전극구조·제조공정의 혁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 대규모 상용화 여부를 지켜봐야 하지만, 배터리가 반드시 금속 집전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존 상식을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소재공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기술입니다.
향후에는 전고체전지뿐만 아니라 전수지전지, 나트륨이온전지, 리튬황전지 등 서로 다른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어떤 시장에서 살아남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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